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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문서가 상황이나 해석자에 따라 서로 다른 평가를 받는 경우는 드물지 않다. 동일한 원문을 두고도 어떤 이는 진본으로 간주하는 반면, 다른 전문가는 위조의 가능성을 제기한다. 이러한 판단 차이는 종종 단순한 해석 관점의 차이로 설명되지만, 실제로는 문서의 형식적 요소, 구성 방식, 맥락적 기능에 대한 종합적 이해 부족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디플로마틱스는 이와 같은 평가의 불일치를 단순한 주관적 해석 차원이 아니라, 문서 구조와 작동 방식에 내재된 다층적 의미망의 결과로 해석한다. 이 글에서는 동일한 문서가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되는 구조적 이유를 디플로마틱스 관점에서 분석한다.

디플로마틱스에서 평가 불일치의 핵심: 기능과 형식 간의 간극
디플로마틱스는 문서를 평가할 때 ‘기능(function)’과 ‘형식(form)’이 상호 보완적으로 작동하는지를 핵심 기준으로 삼는다. 기능은 문서가 실제로 수행한 법적·행정적 효력과 사회적 작동을 의미하며, 형식은 문서가 갖추어야 할 구조적 배열, 서식, 표현 규범을 가리킨다. 이상적으로는 이 두 요소가 일치해야 하지만, 실제 기록 환경에서는 동일한 문서 안에서도 기능과 형식이 완전히 합치되지 않는 사례가 빈번하게 나타난다. 이 지점에서 평가의 분기점이 형성된다.
예컨대 특정 문서가 실제로 토지 이전이나 권한 위임의 효력을 발휘했음에도 불구하고, 결문 구성이나 서명 배열이 동시대 표준과 다를 경우, 일부 연구자는 형식적 불일치를 근거로 진위에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반대로, 형식은 당시의 규범을 충실히 따르고 있으나 실제 행정 절차에서 집행되지 않았거나 효력이 확인되지 않는 문서의 경우, 또 다른 연구자는 이를 ‘형식적 완성도는 높으나 기능이 결여된 문서’로 평가하며 형식적 위조 가능성을 언급할 수 있다. 이러한 상반된 해석은 어느 쪽이 옳다기보다, 평가 기준의 초점이 어디에 놓이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분석 결과로 이해하는 편이 적절하다.
디플로마틱스는 이 간극을 단순한 오류나 예외로 처리하지 않고, 오히려 문서가 생성·사용된 제도적 환경의 복합성을 드러내는 지점으로 해석한다. 기능이 우선시 되는 시기에는 실효성이 형식적 결함을 보완하기도 하고, 반대로 제도 안정기가 도래하면 형식의 엄격성이 기능보다 우위에 놓이는 경우도 발생한다. 따라서 기능과 형식의 불일치는 문서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문서가 놓여 있던 행정적·정치적 상황의 반영일 수 있다.
결국 디플로마틱스에서 평가 불일치는 형식과 기능 중 하나를 배제한 판단에서 비롯되기보다, 두 요소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나타나는 분석상의 차이다. 이 관점에서 보면, 동일한 문서에 대한 상이한 평가는 문서 분석의 실패라기보다, 문서가 지닌 다층적 성격을 드러내는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문서가 속한 문서군(documentary family)의 비교 문제
같은 문서라도 어떤 문서군(documentary family)과 비교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현상은 디플로마틱스 분석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뤄진다. 디플로마틱스는 개별 문서를 고립된 텍스트로 보지 않고, 동일한 발행 기관, 시기, 목적, 행정 체계 안에서 생산된 문서들의 집합 속에서 해석한다. 이때 문서군은 표준과 예외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며, 분석 대상 문서의 위치를 규정하는 참조 틀이 된다.
그러나 비교에 활용되는 문서군의 범위와 성격이 달라질 경우, 동일한 문서라도 전혀 다른 평가를 받을 수 있다. 특정 연구자는 중앙 행정기관에서 발행된 문서군을 기준으로 삼아 분석할 수 있고, 다른 연구자는 지방 행정 문서나 주변 권력 단위의 문서를 비교 대상으로 설정할 수 있다. 이 경우, 중앙 기준에서는 예외로 보이는 형식이 지역 문서군에서는 오히려 관행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예를 들어 중세 후반기 교황청 문서를 분석할 때, 라틴어 문구의 배열 순서나 인장의 크기와 위치를 비교하는 과정에서 프랑스 지역 문서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와, 이탈리아 지역 문서를 기준으로 삼는 경우는 서로 다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프랑스 지역에서는 장식과 형식의 엄격성이 강조된 반면, 이탈리아 지역에서는 실무적 효율을 중시한 간결한 형식이 통용되었던 사례가 확인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이를 충분히 고려하지 않으면, 특정 문서는 표준에서 이탈한 것으로 평가되거나, 반대로 과도하게 정상화될 위험이 있다.
디플로마틱스는 이러한 문제를 인식하고, 문서군 비교 시 지리적 범위, 제도적 위상, 기능적 목적을 함께 고려할 것을 요구한다. 문서군은 고정된 규범 집합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에 따라 변형되는 비교 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서군 선정 방식의 차이는 단순한 방법론적 선택을 넘어, 분석 결과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변수로 작용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동일 문서에 대한 평가 불일치는 분석자의 오류라기보다, 참조한 문서군과 비교 기준의 차이에서 비롯된 합리적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디플로마틱스는 이 차이를 숨기기보다 드러내고, 비교 기준의 전제를 명확히 함으로써 문서 해석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접근을 취한다.
해석자의 관점과 학문적 배경의 영향
디플로마틱스 분석은 높은 수준의 기술적 해석을 요구하는 만큼, 해석자의 지식 배경, 훈련된 관점, 접근 방법에 따라 결과가 달라지기 쉽다. 같은 문서를 법률사료로 접근한 연구자와, 행정제도사적 관점에서 접근한 연구자 사이에는 오류나 일탈에 대한 해석 차이가 발생할 수 있다.
디플로마틱스는 형식의 표준성을 강조하지만, 그 표준이 반드시 고정된 것은 아니며, 각 연구자가 강조하는 요소(예: 인장의 모양, 문장 구조, 수신자 정보 등)에 따라 중점이 달라지기 때문에 해석 차이를 불러올 수 있다. 즉, 디플로마틱스는 객관성을 지향하지만, 완전히 통일된 해석을 보장하지는 않는다.
문서의 사용 맥락이 생략된 상태에서의 평가
문서가 실질적으로 사용된 맥락 즉, 누가 수신했고, 어떤 방식으로 활용되었으며, 실제로 어떤 법적 또는 행정적 효과를 가져왔는지가 밝혀지지 않은 경우, 형식만으로 평가하는 것은 매우 제한적일 수 있다. 사용 맥락이 복원되지 않으면, 형식적 완성도만을 기준으로 삼아 과잉 긍정되거나 과도하게 부정될 위험이 있다.
예를 들어, 문서의 진위 판단에서 결문과 인장이 완비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행정적 효력이 없었던 사례가 존재한다면, 디플로마틱스는 단지 외형이 아닌 사용 기록, 전달 경로, 이행 증거 등을 함께 살펴야 종합적인 판단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일부 분석은 여전히 ‘외형 중심’에 머무르며, 그 결과 동일 문서가 맥락적 이해 여부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
후대 개입 여부에 대한 판단 불일치
후대 보완이나 개입이 있었던 문서, 예를 들어 후속 인장이 붙거나 일부 문장이 덧붙여진 경우에 대해 어떤 분석가는 보존 과정상의 보완으로 간주하고, 다른 분석가는 편집 또는 위조의 가능성을 제기할 수 있다. 이때 판단의 기준은 삽입의 위치, 필체의 일관성, 잉크의 재질, 문맥의 흐름 등을 포함한 총체적 분석에 기반해야 하지만, 분석 방식이 일관되지 않을 경우 동일한 문서도 완전히 상반된 평가를 받게 된다.
디플로마틱스는 그러한 개입이 문서의 실질 기능에 영향을 미쳤는지를 핵심적으로 따진다. 따라서 외형상의 일치만으로는 진위를 단정하기 어렵고, 문서의 제작-보관-재편집이라는 시간적 연쇄를 고려해야 한다.
기록문화 자체의 이질성에서 발생하는 평가 간극
마지막으로, 기록문화의 지역별·시기별 차이도 동일 문서에 대한 이질적 평가를 만들어낸다. 예컨대 동일한 유형의 행정 명령서라도 이탈리아에서는 서문에 신학적 언급이 포함되는 경우가 많고, 북유럽에서는 수신자 명단을 더 자세히 기술하는 관행이 있었다. 이러한 문화적 배경을 간과한 채 표준을 획일화하면, 예외 형식을 가진 문서는 오류로 해석되기 쉽다.
디플로마틱스는 문화적 차이를 고려한 비교틀을 중요하게 여기지만, 실무적 해석에서는 이 다양성이 배제되는 경우가 많다. 결국, 문화적 이질성에 대한 이해 여부 역시 문서 평가의 방향성을 가르는 주요 변수 중 하나다.
평가 차이는 디플로마틱스가 다루는 ‘구조의 언어’다
동일한 문서에 대한 상반된 평가는 단순히 분석자의 실수나 편향이 아니라, 문서가 내포한 형식·기능·맥락·문화의 다층적 구조에서 비롯된다. 디플로마틱스는 이러한 구조를 해석함으로써 왜 같은 문서가 다르게 해석되는지를 설명할 수 있으며, 평가의 다양성을 단점이 아닌 문서 분석의 복합성으로 인정한다. 결국, 디플로마틱스는 텍스트 그 자체보다, 그 구조를 읽는 방식을 통해 진위와 신뢰의 경계를 조율하는 학문적 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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